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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북구 의병장 구국활동 학술발표회 6일개최

일제침략을 막기위해 목숨바친 구한말 경양역권 의병장 재조명

북구 의향의 도시 광주시 북구(구청장 송광운)는 6일 오후 2시, 북구평생학습문화센터 2층 공연장에서 광복회원, 역사문화관련 기관.단체, 주민 등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구한말 경양역권 의병장 구국활동 학술발표회’를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북구는 광복절 제69주년을 앞두고 구한말 경양역권(지금의 중흥동, 우산동 일대)에서 구국활동을 펼친 의병장들에 대한 재조명에 나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발표회는 4인의 의병장이 탄생했던점을 감안 지난 2월 광주 북구문화원에 의뢰한 학술연구용역 결과보고에 따른다.

 

구한말 일제침략을 막기 위해 목숨 바쳐 구국활동을 펼친 ▲양진여 ▲양상기 부자 의병장과 ▲신덕균 ▲김동수 의병장의 의로운 활동을 재조명하고 선양하기 위해 마련됐다.

 

학술발표회는 이상식 전남대 명예교수의 ‘호남의병의 역사적 의의’ 기조발표를 시작한다. 

 

 

이종일 향토문화개발협의회장의 ‘양진여.양상기 부자 의병장에 대하여’, 김덕진 광주교대 교수의 ‘신덕균.김동수 의병활동’에 대한 주제발표가 발표되며 한규무 광주대 교수와 노성태 국제고등학교 교사가 토론자로 나선다.

 

양진여(1860~1910, 서암) 의병장은 1860년 5월 광주군 서양면 이동(지금의 북구 중흥동 498-1번지)에서 태어나, 1908년 7월 삼각산 죽취봉에서 거병하여 광주, 창평, 나주, 장성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의병투쟁으로 다친 몸을 치료하던 중, 1909년 8월 26일 새벽 전남 장성군 갑향면 행정리에서 체포되었다.

 

1910년 5월 30일 대구형무소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이 한 목숨 아깝지 않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치욕을 당하여 형을 받고 죽음은 유감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양상기(1883~1910, 설죽) 의병장은 의병장 양진여의 아들로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의병활동을 전개했고 광주군 서양면 이동 출신이며, 1905년 우리나라 군대인 진위대에서 병사로 활동하다, 1907년 정미 7조약으로 한국군이 강제해산되었다.

 

1908년 5월 광주, 창평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 독립부대를 창설하고 의병장이 되어 동복, 화순, 곡성, 담양 등지에서 구국활동을 했다.

 

추후 일본경찰의 취조를 받는 과정에서 귀순할 의사가 없느냐는 물음에 “귀순할 뜻은 추호도 없으며 죽음이 있을 뿐이다. 만일 살아날 수 있다면 다시 의병을 일으켜 일제 침략자와 싸우겠다”며 의병장으로서 끝까지 투쟁의지를 밝힌 양상기 의병장은 1909년 4월 담양군 정면 덕곡리에서 패전하고 체포되었다.

 

1910년 대구형무소에서 최후를 맞이했으며,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신덕균(1878~1908, 몽암) 의병장은 광주군 서방면 우산리(현재 북구 우산동 444번지)에서 태어났으며, 1906년부터 의병활동을 해오다 1907년 9월 고광순 의병이 창평에서 재기하자 이에 중책 참모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의병활동을 전개하였고, 주로 지리산 일대에서 대활약을 펼쳤다.

 

신덕균 의병장은 1908년 11월 내장산 전투에서 적군의 총살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에도 북향재배하고 황제만세를 3번 외쳤다고 한다.

 

김동수(1879~) 의병장은 광주목 경양면 병문리(현재 북구 우산동 283번지)에서 태어났으며, 1908년 7월 삼각산 죽취봉에서 거병한 양진여 의병대에 가담해 활약했다.

 

이후 양진여 의병장이 체포된 뒤 독립부대를 편성하여 광주, 담양, 창평, 장성, 화순 등지에서 일제 군경에 맞서 용맹을 떨쳤으나, 일본군의 대대적인 공세에 타격을 입어오다, 1910년 1월 충청북도에서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중 옥사했다.

 

이처럼 북구는 의향의 고장 북구의 위상을 제고하고 나아가 호남인의 긍지와 정의감을 널리 알리고 우리지역 출신인 4인의 의병장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한말의병에서 가장 치열하고 최후까지 전개한 호남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선양하는 자리다.

 

특히 이날 토론에 참여한 교수들은 이러한 역사적 가치들이 발굴?연구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선양하는 일이 반드시 뒤 따라야 할 것이라며 ▲생가복권 및 소공원 조성 ▲의병관 건립 ▲표지석 설치 ▲의병총서 발행 등 구체적인 선양방안도 제시할 예정이다.

 

송광운 북구청장은 “우리 북구는 임진왜란 및 대한제국기 당시 호남의병, 일제강점하 광주학생독립운동, 군부독재에 맞선 5.18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고비마다 불의에 항거한 의향의 고장이다”고 말했다.

 

이어“앞으로도 우리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다양한 선양사업을 통해 우리 지역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북구는 지난 2008년 전국 유일의 부자 의병장인 서암 양진여와 설죽 양상기의 호를 따서, 서방 사거리에서 운암 고가도로까지를 ‘서암로’, 신안교에서 일곡동 동아아파트까지를 ‘설죽로’로 명명하여 뜻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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