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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제 객원교수> |
지난 2025년 연말, 싸락눈이 흩날리던 어느 오후 소방서에 긴급출동 벨이 울렸다.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 5층에서 한 젊은 남성이 뛰어내리려 한다는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현장지휘관인 나는 모든 에어안전매트를 차에 실어 서둘러 출동했고, 구조대원들을 실내와 지상으로 나누어 배치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그는 결국 난간을 넘어 4개로 나눠 펼친 안전매트 위로 떨어졌다. 다행히도 큰 부상 없이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귀서하는 지휘차 안에서 온 지구보다 무거웠던 한 생명을 살렸다는 감사기도를 올렸다. 그 날의 여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각기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 전반의 불행을 설명하는 ‘안나 카레니나 법칙’으로 확대된다. 즉, 성공과 안전은 수많은 조건이 동시에 맞아떨어질 때만 가능하지만, 실패와 불행은 단 한 가지 조건의 결핍만으로도 찾아온다는 통찰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자살 문제와 산업재해의 현실 모두 이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최근 통계들이 보여주듯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일탈이나 선택이 아니다. 수십 년간 누적된 수십만 명의 자살 사망자와 하루에도 수십 명씩 생을 마감하는 현실은 반복적이고 구조화된 사회 문제로, 국가 차원의 재난으로 다뤄져야 한다. 산업현장에서도 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되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사회 시스템의 누적된 취약성이 만든 결과다.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같은 제도적 전환은 늦었으나 꼭 필요한 선택이다. 그러나 사후처벌보다 예방에 집중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민 인식의 대전환, 즉 ‘안전인성’ 확립이 필수적이다.
안나 카레니나 법칙의 관점에서 보면, 한 개인이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득, 존중받는 관계, 회복 신뢰, 위기 대응 제도 등 수많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일터도 마찬가지다. 경영자의 안전 의식과 충분한 예산, 합리적 구조, 작동하는 안전시스템이 함께해야 한다. 이 중 한 가지라도 무너진다면 노동자는 벼랑 끝에 서고, 현장에는 사고 위험이 커진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 붕괴를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며 ‘마음의 문제’나 ‘부주의’로 축소해온 데 있다. 중소 사업장에선 사고 발생 빈도가 낮다는 낙관에 젖었고, 비용 압박은 안전을 밀어냈다. 대기업도 안전 투자 여력이 있었지만, 복합적 원인 탓에 사고 예방이 쉽지 않았다. 안전은 단순한 개별 요소가 아니라 전체 시스템의 문제라는 리처드 쿡 박사의 지적은 매우 시사적이다.
‘Safe Korea’는 선언이나 처벌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중소사업장에는 실질적 동기 부여와 현장 중심 안전 관리·감독이 필요하며, 정부 안전기금은 사망사고 감소를 위한 설비 개선에 집중되어야 한다. 대기업은 위험 요인을 스스로 찾아내 전문기관과 협력해 중상해 사고를 줄여야 한다. 특히 안전 정책은 숫자 통계가 아닌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야 한다.
자살을 줄이고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사회는 단순히 통계 수치를 개선하는 것을 넘는다. 가장 약한 사람, 가장 위험한 현장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회가 바로 진정한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다. 안나 카레니나 법칙은 우리에게 엄중히 말한다. 불행과 사고는 늘 한 가지 결핍에서 시작된다고. 그래서 우리의 과제는 분명해진다. 그 결핍이 생기기 전에 미리 다가서고, 무너진 조건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생명이 머무를 수 있는 나라, 안전이 일상이 되는 나라를 위해 안전인성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국민 안전인성에 기반한 ‘Safe Korea’의 미래 모습이다.
휘연(輝然) 김성제 프로필
○ 서울디지털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객원교수
○ 전)건국대 대학원 안보재난관리학과 겸임교수
○ 서울시립대 대학원 재난과학박사(Ph. D)
○ 소방청 인천부평소방서 근무, 암 수술 공상자, 병역명문가
○『교육학개론』,『안전기술과 미래경영』,『ESG 경영전략』공저출판
○ (사)한국ESG학회, (사)소방안전교육사협회, 국민안전인성 교육문화 연구회 정회원
○ 시인, 수필가, (사)한국문인협회, (사)한무리창조문인협회, 하나로국제문화예술연합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