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라인, 김민수기자]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늦깎이 시인이 된 마을에 아이들이 찾아왔다. 할머니들의 삶이 담긴 이야기를 듣고, 가을의 소리를 느끼며, 자신만의 동시를 쓰는 특별한 하루였다.
곡성교육지원청은 곡성의 역사·문화·생태 자원을 독서교육과 연결한 ‘책과 함께하는 곡성길 투어’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관내 초등학교 4개교와 중학교 3개교, 총 372명의 학생이 참여해 책을 들고 마을과 자연을 찾아가는 배움을 이어왔다.
올해 마지막 일정에는 옥과초등학교 1~2학년 학생 34명이 참여해 곡성군 입면 서봉마을의 ‘시인할매 길’을 걸었다. 서봉마을은 평생 농사일과 살림에 매달리느라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길작은도서관’에서 한글을 익히고 시를 쓰기 시작한 곳이다. 할머니들의 삶을 담은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가 출간되고, 그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영화 ‘시인 할매’로 제작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학생들의 마을 탐방은 ‘가을 속의 작은 음악회’로 시작됐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타악기가 들려주는 서로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악기들이 어우러지는 연주를 감상하며 가을의 정취를 느꼈다.
이어 길작은도서관에서는 마을의 옛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통해 할머니들의 삶을 만났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보릿고개를 지나며 어린 나이부터 일을 해야 했던 할머니들의 ‘학교에 가고 싶다’는 소박한 소원조차 이루기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들은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배움의 기회가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간절한 소망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체험은 학생들이 직접 시를 써보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마을을 둘러보며 느낀 가을 풍경과 소리를 의성어·의태어로 표현하고, 말놀이를 통해 짧은 동시를 완성했다. 자신이 쓴 시를 작은 시책으로 엮으며 할머니들이 자신의 삶을 시로 남겼던 경험을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이어갔다.
이번 프로그램은 곡성교육지원청이 자체 개발한 ‘독서인문생태지도’를 활용해‘삶과 연계한 깊이 있는 학습’을 실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책에서 만난 이야기를 마을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하며 배움을 확장한 것이다.
특히 올해는 초·중학교 7개교 372명의 학생이 곡성 곳곳을 탐방하며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가졌다. 책 읽기와 걷기, 듣기, 관찰하기, 글쓰기가 하나의 배움으로 이어지면서 독서활동이 교실 밖 실제 삶의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곡성교육지원청은 이러한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역사·문화·생태 자원을 체계적으로 연결한 ‘곡성 독서인문교육과정’을 개발할 계획이다. 또한 책 읽기와 지역 탐방, 탐구와 표현 활동을 학교 교육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학교자율시간과 연계한 교육활동을 마련하고, 학교별 특색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심치숙 교육장은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우리 마을에서 직접 만나고, 그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이야말로 살아 있는 독서인문교육”이라며 “앞으로 곡성의 다양한 교육자원을 활용한 독서인문교육과정을 개발하고 학교자율시간과 연계해, 학생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에서 깊이 있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