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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주취자로부터 청년경찰을 지켜주세요!

광주서부경찰서 상무지구대 4팀 김세환 경위

청운의 꿈을 안고 경찰이라는 직업에 투신한 청년 경찰이 여기 하나 있다. 경찰학교에서 늘 배웠듯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입문했으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그의 첫 발령지는 지구대였고, 현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바쁜 자정 즈음, 청년경찰이 타고 있는 순찰차에 신고 지령이 떨어진다. ‘시내 번화가의 한 거리에 주취자가 쓰러져 있다.’ 청년경찰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접수 5분 안에 현장에 도착했다.

신고 가게 앞에는 아버지뻘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쓰러져있었다. 청년경찰이 다가가 사내를 깨우자 사내는 고약한 술냄새와 함께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욕설로 되받는다.

청년경찰은 꾸욱 참으며 웃는 얼굴로 사내의 신분 및 주거지를 물었지만 이미 술에 꼬여버릴 대로 꼬여버린 사내의 발음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청년경찰은 결국 그 사내를 지구대로 데려왔고 술이 좀 깨기를 기다렸다.

지구대로 데려온 지 삼십분이나 지났을까 사내가 눈을 떴다. 청년경찰은 다시 한 번 웃는 얼굴로 사내를 대한다.

“선생님 이제 정신 좀 드시나요. 댁에 모셔드리겠습니다. 사시는 곳이 어디...” 청년경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뜸 뺨에 뜨거운 무언가가 날아왔다. 청년경찰은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주위 선배들의 침착하라는 말에 일화를 삭힐 뿐이다. 새벽 한 시, 신고는 계속 들어오지만 출동을 나갈 경찰관이 없다. 청년경찰도 순찰차를 몰고 나가야하지만 사내 때문에 파트너와 함께 발이 묶였다.

 청년경찰은 술취한 사내가 자해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며 ‘국민을 섬길’ 뿐이었다. 이 직장으로 투신하기 전에는 밤이 짧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길다 못해 늘어진 밤에 익숙해져야 한다. 연옥(煉獄)처럼 반복되는 밤은 청년경찰의 숙명이 되었다.

  이는 결코 소설이 아니다. ‘투신’이라는 단어로 ‘입직’이라는 단어를 대신하는 조직의 모든 청년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갖고 있는 에피소드다. 이들은 이 직업을 갖기 전에는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았으나 ‘투신’이후에는 술먹은 사람이 왕인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한동안 우리나라는 술취한 사람의 잘못에 관대한 풍조가 있었다. 그가 심지어 경찰관을 폭행하였어도 ‘술취한 사람인데, 좀 봐줍시다.’는 말이 대수롭지 않게 나왔다.

장본인 스스로도 술에 취하였음을 핑계로 삼는다. 우리 형법에서 술취한 상태에서의 행동은 제정신에서의 행동보다 비난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그 책임을 감경해준다. 국민감정이나 법률상으로나 주(酒)님을 모신(?) 사람에게 관대했다.

  하지만 몇년전부터 주취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주취자 한 명 때문에 경찰인원이 낭비되면, 정작 도움이 필요한 다른 선량한 시민이 치안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국민들 사이에서부터 공권력 강화 요구가 커졌고 이는 경범죄처벌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2014년 3월 22일부터 시행된 이 법에 따르면 관공서에서 주취자가 소란을 피우면 60만원 이하 벌금·과료·구금의 처벌을 받게 된다.

이 개정에 어떤 의의가 있냐하면, 형사소송법상 주거가 불확실하지 않는 이상, 법정벌금형이 50만원보다 적은 범죄는 현행범체포가 불가했으나, 개정 후부터는 관공서주취자소란죄의 법정벌금 최다액이 60만원이기에 현행범 체포가 가능해진 데에 있다.

즉, 위 이야기에 적용해보면 청년경찰은 사내를 현행범체포를 하고 다른 신고에 출동을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청년경찰들은 주취자에게 여전히 시련을 겪고 있다.

법으로는 가능하지만 실무적으로 현행범체포 후 사건처리단계들이 상당한 시간을 소요해야하며, 체포 절차 등에서 겪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들사이에서도 자정운동이 필요하다. 주취상태일지라도 법과 질서는 준수해야 하며, 나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시민이 불편을 겪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경찰 스스로가 자신의 근무에 만족해야 국민에 대한 치안서비스 질도 높아진다는 여러 연구조사 결과를 잊지 말아야 한다. 2012년 한 설문조사에서 경찰이 직업선호도에서는 전체 3위를 했지만 정작 경찰관 대상 근무만족도는 전체 570위에 불과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청년경찰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국민을 위한다는 사명감으로 청춘을 바치고 있다. 이제는 역으로 시민들께서 경찰을 도와주시면 어떨까. 주취자의 경찰에 대한 폭행을 더 이상 평가절하하지 말고 경찰의 엄정한 대응을 응원하고 지지해주시라.

선진 시민이 선진 경찰을 만들고, 선진 경찰이 선진 치안을 만드는 선순환이 되도록 경찰도 시민도 함께 하는 투트랙을 제안해본다.

광주서부경찰서 상무지구대 4팀 김세환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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